제가 지난 영상에서 도파민 단식을 이야기하면서 영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듯 영감 하나로 세상을 놀랍게 할 만한 작품이나 비즈니스 플랜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영감의 가치는 귀합니다. 그럼 영감의 질량, 무게, 부피가 있다면 무겁고 클까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어떤 작은 디바이스 보다도 간편하고 가볍습니다. 나노봇 같은 작은 로봇을 몸에 이식하는 번거롭고 징그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면 우리 자체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receptor, 수신기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내 몸뚱이만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반대의 상황만 열심히 구현합니다. 예를 들어, 더 사실적이고 고화질의 그래픽을 구현하기 위해 더 강력한 그래픽 카드를 장착하고, IMAX급의 고해상도 영상을 위해 몸집이 더 큰 카메라를 쓰며 해당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전보다 더 큰 용량의 저장 장치를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발전된 기술에 감탄하며 화면이 더 커졌는데도 깍두기 현상 없이 깨지지 않는 화질의 티브이를 구매하기 위해 통장 잔고를 확인하거나 할부액을 따져보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영감을 데이터화 한다면 더 단순하고 가벼운 형태의 소스일 것만은 확실합니다. 기업의 일급비밀 정보나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을 미리 빼돌릴 때도 테라바이트 급의 용량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영감이 없는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문서 파일이나 디자인 스케치에 해당하는 정도의 이미지 파일이면 됩니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제작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처럼 지구 상 현존하는 최고 컴퓨터 시스템과 저장 장치를 구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감의 형태를 파일 형식 또는 포맷으로 나타낸다면 a piece of thought, 생각 조각, 이미지 혹은 글귀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은 분야별로 다양하지만, 오늘은 미국의 극작가이며 현대 사회의 시스템, 특히 대중문화, TV와 관련하여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영감을 준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는 미국의 소설 작가 겸 창의적 글쓰기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하나는 2012년에 픽션 부분에서 퓰리처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의 철학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TV와 같은 매스 미디어,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물질주의에 대해 건강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비판합니다.
행복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생각한다고 재조명하는데요. 미국 사람 모두가 자기중심적 이도록 교육되었고, 책임보다는 자유를 강조했다고도 설명합니다. 사실 이렇게 해야만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광고를 해서 잠정적인 고객으로 만들 수도 있고 미국의 시장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 같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 하면 Infinite Jest라고 하는 책이 가장 유명하지만 오늘은 그가 대중문화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A supposedly fun thing I'll never do again이라는 책의 한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데이비드는 이 책에서 TV와 미국의 소설을 비교합니다. TV를 통해서 노력 없이 제공되는 영상 소비 행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TV와 미국의 소설은 플랫폼에 대한 예시일 뿐이지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 자체에 대해서 일깨워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월라스는 개인의 책임보다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책의 내용입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외로운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지내며 드는 정신적 비용을 견디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는 사람들에게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다. 이들을 편의상 조 브리프 케이스라고 하자. 조 브리프 케이스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광경, 볼거리,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TV를 본다. 그들이 TV를 보는 것은 거의 관음증에 가깝다. 사실 티브이는 어디까지나 화면을 통해 일종의 쇼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볼 시청자만 필요할 뿐이다. 관음증 환자라는 개념은 TV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진짜 살아있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품격은 TV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논리의 압박을 받는다.
여기서 볼 만한 가치라는 단어의 원서 표현은 Watchableness입니다. Watchable, 재미있는, 엔터테이닝이라는 뜻입니다. 아역 때 배우로 데뷔하고 열정적인 연기로 유명한 샤이아 라보프라는 배우도 배우 생활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 배우로서 자신이 이미 finished, 끝난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시청자들이 Watchable, 볼만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는지 배우로서, 연예인으로서 발악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이야기한 샤이아 라보프 역시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의 책을 읽고 Watchable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처럼 보입니다.
편의상 월라스라고 하겠습니다. 월라스의 Brief interviews with hideous men, 추남들과의 간단한 인터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재생 용지로 만든 페이퍼 백을 뒤집어쓰고 있는 어떤 사람이 사진으로 나와있는데요. 샤이아 라보프라는 배우도 같은 방식으로 페이퍼 백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나는 더 이상 유명하지 않다'라는 메시지를 적고 레드 카펫을 밟은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본인은 '배우로서의 인생은 끝난 거 같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 출신의 한 영화감독과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독성 아버지의 모습을 함께 그린 허니 보이라는 영화에서 자신이 맡은 아버지 역할을 할 때 월라스처럼 반다나를 두건으로 쓰고 장발에 안경을 씁니다. 정확히 같지도 않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배우로서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월라스의 영향을 확실히 받은 것 같기는 합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의 얘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월라스의 철학은 대학교 교수였을 때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학생들에게 개인 번호를 주면서 "학과 공부와 관련하에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 하지만 내가 돕도록 강요하지는 말라. 여기는 대학이지 고등학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을 돕는 일에는 관대하지만 자립심과 책임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대중을 타깃으로 한 책들은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저렴하게 배포된 권장도서일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그중 한 권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의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학생들에게 수업에 임하기 전에 읽으라고 한 책이 있는데 그 책은 최소 두 번을 읽어야 하고 학점을 짜게 주는 교수였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의 수업에서 A 학점을 받은 학생은 월라스의 문학적 관점과 해석에 반대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실력과 철학을 갖춘 학생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 보더라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가 미국의 대중문화, 물질주의, 미디어에 길들여진 생각이 없고 수동적인 사람들에 대한 개탄과 세대를 바꾸기 위한 열정을 교단에서 쏟아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처럼 자신이 속한 나라, 커뮤니티, 문화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은 굉장히 피곤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어 미국에 팽배한 컨슈머리즘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소비를 유도하는 문화 트렌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글쓰기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번 다뤘던 영상 중에서 빠른 장면 전환보다 다소 난해한 문학작품이 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렸듯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 역시 인터넷 등과 함께 빠른 문화에 익숙해진 미국 문화에 대해서 일침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 같은 사람과 그의 작품도 그가 지양하고자 했던 대중성 위주의 통속소설처럼 여겨지거나 깊이에는 관심 없는 무지한 대중에게 쉽게 평가받는 것은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인터넷, 미디어 중독, 컨슈머리즘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재미 위주의 미디어 중독을 끊어내라고 말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빼앗아가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벌써 20년 전인 90년대 때부터 앞으로 다가올 더 발전된 기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가 일으킬 문제를 미리 보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불이 났으면 불이야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이것들은 소리 없이 인간의 능력을 제한 짓고, 사로잡고, 가두기 때문에 또 다른 위협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현대사회를 살면서 생기는 풀기 어려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데이비드 포스터 월라스가 보았던 것을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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